화당 이윤석

칼럼
새로운 도전 - 유통업 진출 2023-07-07

토목공사를 주로 맡아 하던 차에 1971년 동문동 교동 상가 아파트 건축 공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사를 하고도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여 공사 대금 대신 대물(代物)로 건물을 넘겨 받게 되는데 그것이 유통업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떠맡은 일인데다가 당시의 대구 경제 규모로는 애초에 분양을 기대할 수 조차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직접 경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는데, 건설업을 주업으로 하던 내가 뜻하지 않게 전혀 새로운 분야에 뛰어 드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큰 모험이었다. 미분양된 대부분의 점포에 보증금 없이 관리비도 받지 않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입점 유치를 시도하였으나 이 역시 절반도 채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직접 매장을 운영하기로 했다. 개점 당일 새벽에 의류를 싣고 오기로 한 화물차가 도착하지 않아 애를 태우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다행스럽게 개점을 할 수 있었고 예상 외로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산고 끝에 그렇게 개점한 동아백화점은 3~4년쯤 지나서야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건물을 내 놓으라는 소송을 당하게 되었다. 대물로 건물을 인수할 시 법률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계약서 문구를 완벽하게 작성하지 못한 게 빌미가 되었다.




[ 1972년 9월17일 개점 당일 동아백화점 전경 ]



 이 사건은 9년 가량 끌어오다가 1984년 대법원의 판결이 있고서야 끝이 났다. 오랫동안 송사에 휩싸이다 보니 1984년 동아쇼핑센터를 개점할 때에는 ‘화성이 패소하여 동문동의 동아백화점 건물을 비워주고 덕산동 쇼핑센터'로 옮겨 간다’는 웃지 못할 소문까지 나돌기도 했다. 유통업에 진출하여 힘겨운 나날을 보냈지만, 남들보다 앞선 경영을 하려 했다. 1973년 4월 정부에서 백화점의 정찰제 실시 지침이 발표되었는데, 기왕에 실시하게 될 정찰제라면 조기에 정착 시키자 싶어 지방에서는 최초로 이를 강행했다. 입점 상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깎아 주지 않으면 물건을 사지 않는다’며 반대가 심하였는데, 그때는 가격을 배 이상 불러 놓고 깎아 주는 척하며 판매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나는 회사 지침에 응하지 않으면 철수 시킬 수 밖에 없다는 초 강수로 밀어 붙였고, 이를 어기는 매장에는 3일 동안 담요를 덮어 장사를 못하게 하였다. 그 결과 정찰제는 유례 없는 성공을 이루었고 백화점의 신용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78년에는 현금 없이 신용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는 신용 판매 제도를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도입하였고, 소비자 상담실, 고객 제안함, 소비자 중역 회의 제도 등을 시행해서 그때에는 남들이 소홀히 했던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노력을 했다. 특히 상품의 품질관리를 위한 전문 기구를 설치하고 최신 시험 기구를 도입하여 철저한 사전 품질 검사를 실시하였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선진화된 경영으로 유통업을 리드해 왔다고 자부한다. 건설업만 해 오던 내가 유통업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여 거둔 성공, 그리고 남들보다 앞선 제도를 도입하고 정착 시킨 것은 새로운 도전(挑戰)과 용기(勇氣)가 아니었나 싶다.